브루투스 너 마저...
브루투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하게 된 사건은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제정의 시작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브루투스의 카이사르 암살 배경
로마 공화정의 위기:
내전과 정치 혼란이 지속되던 시기,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으로 군사적 명성을 얻고,
루비콘강을 넘으며 로마 내전을 일으켜
집정관과 독재관 자리를 차지함.
권력 집중과 독재화: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Dictator perpetuo)’이라는
전례 없는 칭호를 받아 공화정의 이상을 훼손.
元老院(원로원)의 권한이 약화되고,
공화정 수호를 외치는 자들 사이에서 반감이 커짐.
브루투스의 입장: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공화주의 가문 출신으로,
카이사르에게 개인적으로 은혜를 입었지만,
공화정 회복이라는 ‘신념’과 ‘가문 명예’ 사이에서 갈등.
주요 사건
암살 모의:
원로원 내 공화정 옹호자들이 비밀리에 암살을 계획.
카시우스와 브루투스를 중심으로 약 60여 명이 참여.
암살 당일 (기원전 44년 3월 15일, 이둣의 날):
포룸 인근 ‘폼페이우스 극장’의 원로원 회의장소에서,
카이사르가 회의 참석 중 칼에 찔림.
브루투스의 최후 일격:
가장 신뢰하던 브루투스가 마지막 칼을 찌르자,
카이사르는
“브루투스, 너마저? (Et tu, Brute?)”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짐
(문학적 창작일 가능성도 있음).
브루투스는
독재자의 권력이 공화정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
정치적 이상주의와 로마 공화정의 이상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암살을 실행.
그러나 암살은 명확한 후속 계획 없이 실행되어,
곧바로 권력 공백과 혼란으로 이어짐.
결과
내전 재점화:
암살 직후 민중은 분노했고,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후일 아우구스투스)가
손을 잡고 암살자들을 공격.
브루투스와 암살자들의 몰락:
브루투스는 필리피 전투에서 패배하고 자결함.
공화정의 종말:
암살은 공화정 복원의 기회가 아닌,
오히려 제정(帝政) 체제의 서막을 열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