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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예박이아빠 2025. 7. 4. 21:27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 1337~1453)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약 116년간 벌어진 장기 전쟁으로,

단순한 왕위계승 문제가 아닌

영토, 무역, 민족주의, 국가 정체성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중세 유럽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원인

 

1. 프랑스 왕위 계승권 분쟁

 

프랑스 국왕 샤를 4세가 후계 없이 사망

→ 모계로 프랑스 왕실의 피를 이은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왕위 주장

 

 

프랑스 귀족들은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왕으로 추대

왕위 정통성 충돌

 

 

2. 영국의 대륙 영토 문제

 

영국은 노르망디, 아키텐(가스코뉴 포함) 등의

프랑스 내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이를 되찾고자 함

 

 

3. 경제적 갈등

 

플랑드르 지방의 모직물 무역권을 둘러싼 분쟁

영국은 양모 공급국, 프랑스는 플랑드르의 귀속을 원함


외교적 노력

 

아비뇽 교황청을 통한 조정 시도:

교황들이 중재자로 개입했으나 실패

 

 

간헐적인 휴전 협정 체결

(예: 브레티니 조약 1360년, 트루아 조약 1420년)

 

 

대부분의 외교 협상은

일시적 휴전이나 조건부 항복에 불과


경과 및 주요 사건

시기 주요 사건 내용
1337 전쟁 발발 에드워드 3세의 프랑스 왕위 주장 선언
1346 크레시 전투 장궁 중심의 영국군 승리
1356 푸아티에 전투 프랑스 국왕 장 2세 포로됨
1360 브레티니 조약 일시적 평화 → 영국 영토 확장 인정
1415 아쟁쿠르 전투 헨리 5세의 압승, 북프랑스 장악
1429 오를레앙 전투 잔다르크 등장, 프랑스 반격 시작
1453 카스티용 전투 프랑스 최종 승리, 전쟁 종결
 

결과

 

프랑스의 승리:

영국은 칼레(Calais)를 제외한 모든 대륙 영토 상실

 

 

영국 내 정치 혼란 가속:

이후 장미전쟁으로 이어짐

 

 

프랑스 왕권 강화:

중앙집권 체제 확립 기반 마련

 

 

근대 전쟁 양상의 변화:

기사 중심에서 보병·화약병기의 전술로 전환


영향

 

민족의식의 형성:

프랑스·영국 모두 국가 정체성과 민족주의가 성장

 

 

중세 봉건제의 쇠퇴:

장기 전쟁으로 봉건 귀족의 군사력 약화

 

 

군제의 변화:

상비군의 필요성, 장궁·화승총 등의 사용 확산

 

 

여성 영웅의 탄생:

잔다르크는 종교·민족·여성의 상징으로 기억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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