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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피델리스(St. Fidelis of Sigmaringen)

예박이아빠 2025. 4. 24. 03:08

성 피델리스(St. Fidelis of Sigmaringen, 성 피델리스 사제 순교자)는

16세기 말~17세기 초 독일에서 활동한 가톨릭 사제이며,

개신교 개혁에 맞서 신앙을 지킨 순교자입니다.

 

본명은 마르크 레이(또는 마르쿠스 레이, Markus Rey)였으며,

성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수사 사제로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출생과 초기 생애

 

1577년 독일 식마린겐(Sigmaringen)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마르쿠스 레이이며,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지녀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변호사로 활동했으나,

당시 사회의 부패한 법률 구조에 실망하여

세속 직업을 포기하고 성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습니다.


사제 서품과 사목 활동

 

수도자로서의 이름으로

‘피델리스’(Fidelis: 충실한 사람)라는 이름을 선택하였습니다.

 

1612년 사제로 서품된 후,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며

성실하게 사목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탁월한 설교가이자 성직자 교육에도 열정을 쏟았으며,

가톨릭 신앙 수호에 앞장섰습니다.


개신교 개혁에 맞선 선교 활동과 박해

 

17세기 초, 유럽에는 개신교 종파(특히 칼뱅주의)의 확산이 활발했습니다.

 

교황청은 피델리스를 스위스 그라우뷘덴(Graubünden) 지방으로 파견하여,

개신교로 개종한 지역에서 다시 가톨릭 신앙을 전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라우뷘덴 지방은 특히 칼뱅주의가 강세였으며,

긴장과 폭력이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순교

 

1622년 4월 24일,

피델리스는 그라우뷘덴의 세위스(Seewis) 마을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칼뱅주의자들에게 붙잡혀 채찍질과 고문을 당한 뒤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개종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나는 로마 가톨릭 신앙 안에서 죽고자 합니다”라고

고백하고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약 45세였습니다.


시성과 신심

 

성 피델리스는 1746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사제들의 수호성인이며,

특히 신앙을 위해 박해받는 이들을 위한 전구자

신심이 깊습니다.

 

기념일은 4월 24일입니다.


영적 유산

 

성 피델리스는 신앙과 양심에 충실하였던 삶을 통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남깁니다.

 

진리 앞에서의 담대함:

진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은 모범입니다.

 

순명과 헌신: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로서

가난과 복종, 정결의 삶을 충실히 살았습니다.

 

사목자의 책임:

사제로서 병자, 가난한 이들, 진리를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