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의자놀이
2018. 6. 18.
사람 수 보다 모자란 의자를 가져다 놓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원을 그리다가 호각 소리에 맞추어 재빨리 의자에 앉는 놀이, 초중고 시절 레크리에이션으로 많이 하던 놀이이다. 꽤 재미있었고, 승부욕을 자극했던 놀이였던 기억이 있다. 놀이 참여자 보다 작은 수의 의자는 탈락자 수가 늘어갈수록, 생존자 수가 적어질수록 박진감을 넘치고, 궁극적으로 1명이 최종 승자가 된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의자놀이의 법칙은 그랬다.
어른이 되었다. 더 이상 레크리에이션은 즐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학창시절의 의자놀이는 어른 판 의자놀이로 계속되고 있다. 내 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이 의자를 빼앗기도록 해야 하는 어른 판 의자놀이이다. 학창시절의 의자놀이는 박진감, 재미를 위해서 했다면 어른이 되어 하는 의자놀이는 가족의 생계를 쥐고 하는 서든 데스 경기이다.
내 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은 인정할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의 생계, 삶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문제의 본질이 등장한다. 다들 자기의 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데, 왜 자꾸 의자 수를 줄여나갈까?
각종 법과 제도 개선으로 이러한 어른들의 의자놀이에 표면적인 제동은 걸렸지만, 여전히 어른들의 의자놀이는 계속되고 있다. 내가 있는 조직에서의 의자놀이는 이렇다. 내가 최상위 1%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하거나 행위를 하면 대다수의 조직원들이 의자를 빼앗으려고 한다. 물론 이는 불법이다.
그래서 이들은 합법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감사를 하고, 감사결과 사소한 흠결을 발견하면 중징계를 내린다. 그 절차를 버티지 못하고 이 조직을 떠나간 사람이 다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효과가 세다. 이후 옳은 소리 하지 못하고, 잘못된 주장에 반대하기 힘들어진다. 문제 제기를 하면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어 스스로 의자를 버리고 나가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공심으로 가득 차 감사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이행하는 감사관이 있다면, 나는 의자놀이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불의를 알면 제대로 취재하여 보도하는 언론사가 있다면, 나는 의자놀이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공정한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나는 의자놀이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 불의를 인정하고 건강하게 견제하는 동료들이 있다면 이러한 의자놀이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른들의 의자놀이를 하지 않는 방법은 당연하다. 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 가족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가족이 소중하기에, 각자 의자를 먼저 생각하도록 밀어붙이는 1%의 이익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 1%의 이익에 우리는 동의하면서 의자를 빼앗기 보다는 우리 모두의 의자를 더 이상 빼앗지 못하도록 엄중한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다른 사람이 의자를 빼앗기기 원하는 조직원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너희는 우리를 위해 소모되다가 우리가 그만하라면 그만하고 죽어라. 알았지?”
지금 의자를 빼앗으려는 타깃이 제거되면 다음 타깃은 당신이 될 수도 있다.
공지영의 ‘의자놀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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